조용하면서 활력 넘치는 원고개 마을

스마트팜, 마을관리협동조합 등 여러 분야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이뤄낸 원고개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천마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승인 2022.02.15 03:25 의견 0

코로나의 기세가 잠시 주춤하던 작년 11월 초. 센터 식구들과 아침 일찍 대구 서구 원고개 마을 답사에 나섰다.

원고개는 ‘원님이 지나던 고개’라는 뜻이다. 옛날 경상감영으로 부임하는 고을 원님이 지나던 길목이 현재의 원고개 마을 안에 남아있는데 거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원고개 마을뮤지엄 내 마을 조감도. 사진: 이건희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도시재생사업에 있어서 원고개 마을은 훌륭한 선도사례이기 때문이었다. 마을관리협동조합과 스마트팜 운영은 우리 천마마을도 꼭 알고 배워야 했기에, 많은 궁금증과 기대를 안고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원고개 마을뮤지엄 개관식. 사진: 대구광역시 서구청 홈페이지 제공

가장 먼저 원고개 마을뮤지엄을 찾았다. 작년 4월 15일에 개관식을 가진 원고개 마을뮤지엄은 셀프빨래방, 청소년공간, 공유부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민들을 위한 사랑방 같은 것이다.

원고개 마을뮤지엄 내부에 설치된 셀프 빨래방. 사진: 이건희

그곳에서 마을활동가 두 분을 만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원고개 마을에는 뮤지엄말고도 희망공작소, 다락방, 스마트팜 등 여러 마을 자원들이 있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는 원고개 마을협동조합으로 현재 51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원고개 마을협동조합(이사장 김진동)은 당초 도시재생 주민협의체가 발전하여 2017년 11월 21일 마을카페(원고개 다락방) 운영을 위해 설립되었다. 21년도 2월에는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어 1억원의 운영비를 확보하기도 했다.

원고개 다락방. 사진: 대구광역시 서구청 홈페이지 제공

다락방의 경우 오래된 파출소를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까페로 주민협의체와 자원봉사자가 자율적으로 운영 중이다. 희망공작소 또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목공체험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원고개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만든 자생적 결과다. 원고개마을은 2020년에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고 난 뒤 주민 스스로가 마을을 가꿔왔다고 말하는 활동가님의 목소리에서 어떤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주민이 만든 목공예 작품. 사진: 이건희

마을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시설 내부를 구경했다. 마을뮤지엄 내부에는 주민들이 공작소에서 만든 목공예품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도 있었다. 주민들의 솜씨가 대단했다.

공유부엌에 모인 원고개 마을 주민들. 사진: 이건희

그리고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에 주민협의체에서 기획한 김장김치 나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행사가 진행 중인 공유부엌은 김장을 준비하는 마을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주민이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활동가님은 말했다. 쌀쌀한 11월 날씨에도 동네 이웃 간의 소란 섞인 웃음은 힘차고 따뜻했다.

마을뮤지엄 바로 옆에 위치한 스마트팜 시설. 사진: 이건희

우리가 가장 궁금해했던 스마트팜 시설은 뮤지엄 건물 바로 옆에 부속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천마마을 스마트팜과 같은 밀폐형 재배시설로 10평 남짓한 크기였다.

양 끝에 계신 원고개 마을활동가님들이 스마트팜 안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 이건희

시설 문을 여니 갑자기 더운 공기가 훅 끼쳤다. 바깥 공기에 비하면 스마트팜 내부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는데, 여름이면 이곳이 가장 시원한 곳이라고 활동가 한 분이 설명했다. 열린 문 너머로 스마트팜 시설이 품고 있던 초록빛 작물들이 대단히 정갈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고개 마을 스마트팜 시설 내부. 사진: 이건희

뜨뜻한 건물 내부는 첫눈에 봐도 굉장히 깨끗했다. 케일, 상추, 치커리 등의 채소들은 일사불란한 자세로, 똑같이 일사불란한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숨쉬고 있었다.

수확을 기다리는 케일들. 사진: 이건희

층마다 골고루 자리 잡은 채소들은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크고 싱싱했다. 개중에는 모종도 있었는데, 정육면체의 이끼 덩어리 같은 것 위에서 조그만 잎을 틔운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종이컵 크기만 한 용기 안에 담긴 모종. 사진: 이건희

원고개마을의 스마트팜은, 폐공가를 정비하며 생긴 공간을 나눔 텃밭으로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마을 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야외 텃밭을 조성했지만 가꾸는 일부터 수확을 나누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에 원고개마을은 나눔 텃밭을 스마트팜으로 탈바꿈시켜 그것을 마을협동조합이 관리하게 했다. 현재는 작물 납품과 더불어 체험 프로그램이나 공유부엌을 활용한 샐러드 강좌 등 여러 방면으로 스마트팜 자원을 운용하고 있다.

설명을 이어가는 활동가의 옆으로는 다음 수확을 책임질 모종들이 배양액에 담긴 채 앞다퉈 잎을 틔워내고 있었다. 주민들의 기대와 노력을 양분삼은 채소들의 생육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듯 보였다.

많은 모종들 밑으로 맑은 배양액이 흐르고 있다. 사진: 이건희

스마트팜 시설을 나오자 잊고 있었던 가을이 다시 성큼 다가왔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마을활동가님들과 작별인사를 나눴고 왔던 길을 되돌아 마을을 빠져나갔다.

걷다가 문득 마을이 너무 조용하고 평범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마을 주민이 일군 성과에 비하면 겸손하고 소박한 마을 정경이었다. 도시재생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있는 듯한 모습 같기도 했다. 화려한 벽화나 설치물도 의미 있지만, 그 뒤에 사는 주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마을의 자원이라는 것을 원고개마을은 깨달은 듯 싶었다.

원고개 마을뮤지엄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정경. 사진: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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