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담은 '두지'

여주시 생활문화전시관 여주두지에 가다

여주 중앙동1지역 도시재생현장 승인 2023.11.16 09:57 의견 0

한글시장 한가운데 세워진 커다란 이정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오면, 특별한 박물관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작지만 알찬 전시내용으로 지역민들은 물론 여주를 찾는 타지 사람들에게도 입소문이 난 생활문화전시관 ‘여주두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있다. 마을 아카이브 작업 때부터 여주두지와 함께한 이경미 해설사다. 지난 11월 8일, 여주두지에서 그를 만나 여주두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여주두지의 이야기꾼 이경미 해설사. 그는 여주두지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물건에 얽힌 사연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준다.


여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지’

여주두지의 ‘두지’는 뒤주의 한자식 표현이다. 하고 많은 물건 중 왜 하필 뒤주일까. “옛날에는 뒤주에 곡식이나 귀한 것들을 담아 두었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주 사람들의 귀한 기억을 담아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전시관 이름을 ‘여주두지’라고 했어요. 여주 사람들이 살아온 지난 백 년간의 희로애락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죠.”

‘두지(뒤주)’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여주두지에는 여주 사람들이 소중하게 보관했던 옛 물건들로 가득하다. 2016년부터 시작된 마을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모은 물건들인데, 단순히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물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모았다. “한 마을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어요. 보면 사소해 보이는 물건 하나하나에도 다 사연이 담겨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전시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죠.”

군대에서 배운 ‘바리깡 미는’ 기술 하나로 이발소를 차렸다는 변태한 할아버지가 40년 넘게 사용했던 이발소 의자다. 손재주가 좋았던 변태한 할아버지는 이 이발소 의자는 물론 가위, 칼갈이 등 각종 미용도구도 손수 만들어 사용했다.
한국전쟁 당시 특수부대에서 활약했던 참전용사 경인선 할아버지의 태극기와 어깨띠. 임무에 나갈 때마다 품 안에 지녔다는 태극기는 위험한 임무 속에서도 주인과 함께 무사히 귀환했다.

쉽지 않았던 아카이빙 작업... 우여곡절 속에서도 ‘포기는 없었다’

물론 지금의 여주두지가 있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문화관광형 시장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지만,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생활사 박물관이 과연 지역의 관광이나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냐는 반대도 많았다. “이벤트성 사업과는 달리 단기간에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문을 두드린 아카이빙 업체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아가면서도, 잊혀가는 지역의 이야기를 모으는 것에 뜻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카이빙 작업 중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어느 마을에서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전에 쫓겨난 적도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 열댓 명이 우루루 몰려오니까, 시골 어른들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의심을 풀고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담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카이빙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우선 그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갔다. “마을 분들이 저희가 하는 일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마을 공청회를 두 번씩, 세 번씩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허락을 받으면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그분들과 일상을 함께했죠. 가끔은 일손을 돕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어르신들과 인간적인 정을 쌓았어요.” 처음에는 의심의 눈길로 낯선 젊은이들을 경계하던 주민이 나중에는 손수 장롱문을 열어 보이며 물건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번은 저희가 아카이빙을 끝내고 마을을 떠나려는데, 어르신 한 분이 제 손을 잡으시면서 ‘왜, 가려고? 또 와, 또 올거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동안 정이 드신 거죠. 그렇게 처음에는 의심하시던 분들도 곧 저희들의 진심을 아시고 살갑게 대해주셨어요.”

"여주두지의 이야기는 여주의 역사이자 정체성"

여주두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단체로 체험 학습을 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체험존에서 빌린 쾌자를 입고 지게를 직접 지어보기도 하고, 먼저 방문한 자녀의 소개를 받은 부모님들이 가족과 함께 여주두지를 둘러보는 경우도 있다. 어르신 관객들은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같이 방문해 어린시절 추억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윗세대에게는 지나간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매개가, 아랫세대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경미 해설사의 남은 목표는 여주두지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이경미 해설사는 지금도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일전에 유치원 아이들이 견학을 왔을 때 함께 쾌자를 입고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교육 효과도 훨씬 좋았어요." 앞으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이경미 해설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혔다.

"여주두지에 담긴 이야기는 여주의 역사고 여주의 정체성이에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여주두지에 방문해서 직접 보고 느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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