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취미의 마음으로, 그래서 더 진심으로 커피를 내려요.”

부산 사상역 뒤편에 있는 괘법동 카페. ‘카페는 취미입니다만,’ 형제의 이야기

부산 괘내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 승인 2023.11.16 15:50 | 최종 수정 2023.12.07 08:27 의견 0
‘카페는 취미입니다만,’ 외관

유동 인구가 적은 사상역 뒤편 골목에 자리한 한적한 카페.

‘카페는 취미입니다만,’은 하루에 다섯 시간만 영업한다. ‘사장님이 취미로 카페를 하시나?’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심지어 가게 이름도 ‘카페는 취미입니다만,’이다.

취미가 업(業)이 된다면 어떨까. 스타브랜드가 된 블루보틀의 창업자는 커피를 좋아하는 음악 연주자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취미의 마음으로, 그래서 더 진심으로 커피를 내리는 '카페는 취미입니다만,' 형제에게 ‘덕업일치’로 사는 삶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물어봤다.

■ ‘카취만’의 시작

“괘법동 뒷골목의 낡은 유리 가게, 그곳에서 카페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동생 이영준씨의 취향이 묻어있는 카페 내부의 책과 앨범

작년 11월.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를 운영하는 형 이문오씨와 동생 이영준씨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작업실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낡은 건물이라도 손수 꾸밀 수 있는, 사무실처럼 틀에 박히지 않아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이런 조건을 갖춘 작업실을 찾던 중 괘법동 골목에 있는 낡은 유리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작업실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다가 이 장소를 보게 되었어요. 그때는 폐가나 마찬가지였죠. 형이 내부만 고쳐서 작업실 겸 카페를 하자길래, 두 달 정도 운영 준비를 한 다음 올해 초에 카페를 개업했어요.”

이 형제는 하루에도 커피를 몇 잔씩 마시던 이른바 ‘커피 애호가’들이다. 그들은 작업하면서 좋은 원두로 커피를 마시길 원했고, 형 이문오씨는 커피를 팔아보자고 동생 이영준씨에게 제안했다.

■ 맛있는 음료와 기분 좋은 여유를 선물해주는 공간이 되기까지

“커피를 좋아하니까 즐기면서 운영한 거죠.”

‘카페는 취미입니다만,’ 메뉴판
밀샷추 (밀크티 샷 추가) / 말차라떼

‘카페는 취미입니다만,’에서 제공하는 음료는 어딘가 특별하다. 이형제는 원두 선택에 특히 신경을 쓰고, 마니아층이 두터운 '만월회' 밀크티 원액을 판매한다. 원두의 원재룟값이 비싸서 아메리카노를 2천원에 팔면 남는 게 없지만, 이 모든 게 ‘취미’라서 가능하다. 이형제는 본인들이 개발한 음료 레시피를 ‘괘리단길’ 틱톡 계정에 공개했는데, 시그니처 메뉴 '짱샷추(업그레이드 아샷추)'가 큰 인기를 얻으며 타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형제가 제작한 카취만 액자

카페 내부로 들어오면 알파카가 커피를 들고 있는 액자가 눈에 보인다. 뉴진스의 앨범을 오마주한 듯한 액자는 ‘사장님이 예술가는 아닐까?’라는 상상을 자아낸다. 이형제는 카페 개업에 앞서 카페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차례 외주업체와 수정을 걸친 뒤, 느긋한 느낌의 알파카가 커피를 들고 있는 ‘카취만 캐릭터’가 세상에 나왔다.

“이름이 기억에 안 남는 카페도 많잖아요. 불어나 영어를 쓰는 카페들은 겉은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어도 ‘기억에 안 남는 공간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카페는 취미입니다만,’이란 간판과 직관적인 알파카 캐릭터를 사용해서 이 공간을 재미나게 그려봤어요.”

외부에 그려진 카취만 캐릭터와 카페 로고

■ 한적한 괘법동 거리를 밝혀주는 곳

“누군가한테는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의 장소이기를 바랍니다.”

이형제의 본업은 재택근무가 가능해서, 카페 지하실을 작업실로 쓰면서 ‘본업’과 ‘카페 일’을 병행할 수 있다. 최근 본업이 바빠지면서 영업시간을 2시간 단축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카페에 애정을 쏟고 있다

“손님이 엄청나게 많은 게 아니라서 단골손님들이 오랜만에 오면 되게 반가워요. 남자 승무원 손님도 계시는데 그분은 비행하시다 보니 바쁘신가 봐요. 비행 끝나시면 책 읽으러 오셔서 한참 계시는데 그게 참 감사하죠. 이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어두운 골목을 밝혀주는 카취만의 간판

이형제가 처음 괘법동 골목을 발견했던 1년 전. 이 골목은 폐가로 가득해서 어딘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었다. 카페를 열고 몇 개월 뒤 ‘덕클’이라는 퓨전 중화요리 음식점이 생기며 지금의 ‘괘리단길’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 길을 걸을 때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이형제는 퇴근할 때 은색 간판을 켜두고 퇴근한다.

“언젠가는 저희가 폐업하고 본업에 충실하더라도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거리를 지나가면서 ‘아 여기 카페 있었던 곳인데,’ 라며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 사장 맨날 작업하다가 나오고…’이런 식으로 여기를 떠올리면서 전형적인 카페 느낌이 아니라 재밌게 추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한마디

“주말이 기다려지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세요.”

커피를 내리고 계신 이문오씨와 이영준씨

본업이 확실히 정해져 있어 부업으로 카페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문오씨와 이영준씨. 업(業)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유연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수익과 직결된 ‘본업’으로 ‘취미’를 선택하는 건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돈이 없더라도 행복해’가 아닌 이상 일을 취미로 하는 건 말리고 싶어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도 알림으로 들으면 짜증이 나잖아요. 취미가 일이 되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본업으로 취미를 가질 순 없더라도,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주말이 기다려지게 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걸 추천한다며 끝으로 그들의 소망을 전했다.

“주말이 기다려지게 하는 어떤 것만 찾을 수 있다면 그때는 일도 취미처럼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며 주변 사람들이 힘들 때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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