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런던의 도시재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강원도지원센터 석재현 승인 2021.03.07 02:55 의견 0

어린 시절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다. 꽤 오래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런던은 빨간 2층 버스와 시대를 알 수 없는 옛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매료되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신기하기만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어진 지 굉장히 오래 된 건물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되었는지 또 어떻게 그곳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왜 런던일까? 런던은 대영제국의 수도였고,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무수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오래되고 쇠퇴한 도시였다. 어느 도시보다도 빠르게 발전해 왔기 때문에 도시의 쇠퇴 또한 빠르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한 런던의 70년간의 도시재생을 런던의 대표적인 10곳의 장소를 통하여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김정후는 건축 공학을 전공하고 런던정경대학에서 런던의 도시재생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건축가이자 도시사회학자이다. 그 덕에 저자는 런던을 도시재생과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오랜 시간 관찰해야 알 수 있는 다채로운 면면들을 담을 수 있었다.

런던의 도시재생을 관통하는 세 가지는 ‘공공 공간’, ‘보행 중심’, 그리고 ‘시민’이다. 첫 번째로 소개 된 장소인 사우스뱅크는 과거 가장 가난했던 지역 중 한 곳으로, 런던의 템즈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불균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런던은 템즈강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관광명소와 주요 공원들, 상업지구,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북쪽에 집중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살기 좋은 북서쪽으로 부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남쪽은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쇠퇴한 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런던의 자치구들의 빈곤 상태를 조사하면 가장 하위 3개의 구는 항상 템즈강 남쪽과 동쪽이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도시재생사업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우스뱅크가 다른 지역과 다르게 눈에 띄는 점은 워털루 지역 주민이 지분을 획득하여 자발적 공동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런던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으로 남은 이곳이 이익만을 생각하는 부동산 투자 회사와 맞서기 위해 사우스뱅크의 부지 일부를 획득해 투자회사와 경쟁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가 조직되어 무분별한 재개발로 원주민과 영세 사업자들이 일방적으로 쫓겨나지 않도록 개선하고 지역 정체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어떤 공간이든 쇠퇴하느냐 번성하느냐의 차이는 시민에 달려있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찾고 그 공간을 좋아하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사우스뱅크는 보행환경 개선을 통해 공간이 활력을 찾도록 유도했다. 결국 도시재생에서 ‘공공 공간’을 확보하고, ‘보행 중심’으로 설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이 가장 처음으로 사우스뱅크를 소개한 이유가 아닐까.

“사우스 뱅크의 외형은 이미 50여 년 전에 갖추어졌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결정적인 차이가 한가지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이다.

(중략) 사우스뱅크에는 최고 수준의 음악, 미술, 영화, 문학, 축제, 음식이 있고 이 모든 것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거리와 공간이 있다. 흔히 도시 재생을 ‘소외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라 표현한다. 그렇다면 사우스뱅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라 부를만하다.”

-p.31 사우스뱅크 모두를 위한 휴식처이자 아지트 中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에서 소개하는 10곳의 도시재생은 단숨에 진행되지도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도 않았다. 잘못된 선택으로 외면 받은 건축물을 20년 만에 허물기도 하고, 옛 건축물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상업성을 일부 포기해 층고를 낮추고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간소화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세계적인 도시 런던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런던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런던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했으며, 반성하고 실천했다. 이것이 런던이 진화해 온 방식이다. 런던의 진화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고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의 도시재생 사례가 도시재생의 해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각 도시가 처한 상황과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런던의 끊임없는 도전에서 우리 도시의 미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도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끝이 도시의 소멸이 될 수도 있고 ‘재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의 많은 도시들이 소멸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이제 모두가 우리의 도시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김정후저|21세기 북스 펴냄|발행일 2020.7.8|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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