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소계동 출신의 시인, 살매 김태홍을 찾아서

구암소계통합센터 권형수 승인 2021.03.07 03:06 의견 0

“위대한 작가는 자신의 나라에서 제2의 정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권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조국인 소련의 인권탄압과 폭정에 대해 고발하고 기록한 소설가 솔제니친. 조국은 그에게 11년의 수용소 생활과 국외추방을 명한다. (소련이 붕괴한 후인 1994년, 그는 20년 만에 조국으로 귀국한다) 그것은 조국을 엄정하게 비판한 자의 영예로서, 무소불위의 정권마저 두려워한 위대한 작가라는 방증이었다.

구금과 추방 그리고 고문. 부패한 정권은 언제나 행동하는 지식인을 폭압해 왔으나 폭거에 항거한 역사적 위인으로, 기념과 추념의 대상으로 그들을 영속게 했다. 이러한 역사적 궤적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며 보편적 역사로서 우리에게 존재해왔다.

1960년 4월 12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 사진과 함께 「부산일보」 1면에 실린 시 한 편도 바로 그러했다.

봄비에 눈물이 말없이 어둠 속에 괴면

눈등에 탄환이 박힌 소년의 시체가

대낮에 표류하는 부두

(…중략…)

파도는

양심들은 역사에 돌아가 명상하고

붓은 마산을 후세에 고발하라

밤을 새며 외치고

<김태홍, 마산은 中>

1960년대 살매 김태홍(사진출처 :「살매 김태홍 시 전집」, 저자 : 김태홍, 펴낸이 : 정진이, 펴낸곳 : 국학자료원, 2013. 9. 2)


살매 김태홍(1925년~1985년).

창원군 창원면 소계리(현 창원시 의창구 소계동) 출신으로 “경남과 부산 지역 민족시의 부피를 키운 시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언론인이자 교육자, 그리고 시인으로서 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저항하며 시를 발표한다. (5.16 군사정변 당시, 그가 쓴 신문 논설이 문제가 되어 교직에서 해직되기도 한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 사진과 함께 실린 그의 시 『마산은』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도화선이 되며, 3·15의거의 정신을 대변하는 시 9편과 같이 국립 3‧15 민주묘지의 기념시비로 건립된다.

오늘날 3·15의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살매 김태홍은 낯설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비가 있는 국립 3·15 민주묘지를 거닐며 지역의 역사적 인물이자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지식인으로 김태홍, 그를 기억하고 전하고자 한다.

국립 3·15 민주묘지 올라가는 길에서(사진촬영 : 권형수)

구암·소계 도시재생 통합센터에서 도보로 출발해 10분 남짓 걸었을까. 3·15의거 기념탑에 대한 설명이 적힌 담벼락을 마주하였다. 국립 3·15 민주묘지의 초입이었다.

민주묘지로 올라가는 언덕길,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을 꽤 볼 수 있었다. 1월임에도 영상 11도를 기록해서일까, 민주묘지엔 가벼운 외투 차림에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엄숙했던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민주묘지 내부엔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네 마실 나온 것 마냥 민주묘지가 익숙한 사람들을 잠시 구경하다 몸을 움직였다.

국립 3·15 민주묘지 기념시비(사진촬영 : 권형수)

살매 김태홍의 시비는 초입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한 자락 길게 펼쳐진 책모양의 조형물로 조성돼 있어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햇빛이 슬쩍 비춘 시비에 뒤편 녹음이 방풍처럼 서 있었다.

김태홍 시를 포함한 10편의 시가 기념시비로 조성돼 있다(사진촬영 : 권형수)

"봄비에 눈물이 말없이 어둠속에 괴면 눈등에 탄환이 박힌 소년의 시체가 대낮에 표류하는 부두"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던, 국어교사이기도 했던 김태홍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적어 내려갔을까' 생각이 이어지다, "눈등에 탄환이 박힌 소년"이 열일곱의 나이로 멈춘, 묻힌 묘를 찾아 뵀는게 옳다 여겨져 소년에게 향하였다.

시비에서 묘역까지는 산책로와 계단을 걸어, 5분 정도 걸렸다.

소년을 뵈러 왔건만, 같은 모양의 봉분, 비석 속에서 소년을 단번에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소년이었고 또다른 김주열이었기에.

짦은 묵념.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그의 시를 다시 읊조리는 것으로 마음을 짐작해 보는 것이었다.

정치는 응시하라. 세계는

이곳 이 소년의 표정을 읽어라

이방인이 아닌 소년의 못 다한 염원들을 생각해 보라고

<김태홍, 마산은 中>


국립 3·15 민주묘지에서 살매 김태홍을 찾아서, 기록하고 기억한다.

연보

1925년 3월 20일 경남 창원군 창원면 소계리( 현 소계동)에서 출생

1946년 진주사범학교 졸업

1946년 ~ 51년 마산여고 교사로 근무, 이 시기 해인대(현 경남대) 졸업 및 등단

1952년 ~ 58년 결혼 및 부산상고 근무

1958년 ~ 72년 부산고 근무

1962년 ~ 66년 부산일보 논설위원 겸직

1968년 ~ 72년 국제신문 논설위원 겸직

1972년 ~ 76년 부산교육원 근무

1978년 ~ 85년 반송중·감만중·충렬고등학교등학교 교장 재직

1985년 11월 4일 췌장암으로 인해 향년 60세로 작고

시집

1950년 <땀과 장미와 시>

1954년 <창>

1958년 <조류의 합창>

1965년 <당신이 빛을>

1973년 <공>

1982년 <훗날에도 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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