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의 문화자원 동헌 탐방기사 - '동헌을 가다'

도심속의 역사공원 울산 '동헌' 탐방

울산중구로다현장지원센터 김영 승인 2021.03.08 21:57 의견 0

울산 중구 중앙동에 위치한 동헌은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실과 거주 기능을 동시에 하는 관청이었다. 그래서 동헌을 주위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울산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으로 이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울산군청의 회의실로 이용되었다. 81년도에 비로소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내아, 오송정 등 주요 시설만 복원하여 현재의 동헌의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97년도에 울산의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었다.

과거 울산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였던 중앙동의 주변에는 동헌과 같이 많은 역사자원이 분포해 있다. 오늘은 그중 동헌을 탐방해보고자 한다.

△ 동헌의 입구

동헌의 입구는 굉장히 디테일했고 웅장했다. 옆의 공사장 벽만 없었다면 조선시대로 날아온 것만 같은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옆에는 울산시립미술관이 올해 11월 완공을 앞두고 한창 공사 중에 있다. 조선시대의 건물의 동헌과 현대의 건물인 울산시립미술관이 어떻게 디자인적으로 조화를 이룰지 기대된다.

△ 동헌 전경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찬바람과 비바람을 오랜 세월 동안 버텨내어 수목들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 길을 따라 전통무늬로 만들어진 작은 등이 조성되어 있어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졌다. 밤에 불이 들어온다면 아주 멋있는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 동헌 관광안내소 전경

△ 동헌 관광안내소 안내판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오른 편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관광객 수 방문으로 인해 현재는 관광해설사가 배치되지 않고 있다. 대신 옆에 동헌에 관한 팸플릿을 참고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해설사분의 전문적인 설명을 들으러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동헌의 넓은 마당

동헌은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는 여러 행사가 가능하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듯이 잔디밭에 앉아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이 글을 쓰는 백일장을 진행하기도 하고, 평일 오후의 동헌은 동네 어르신들의 담소 공간이 되어 노인분들을 위한 행사가 주로 진행된다. 늦은 저녁에는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조용한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등, 동헌은 좋은 '도심 속 역사 공원'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 동헌 내 관아

관아 건물이다. 관아는 울산도호부사(사또)가 집무를 보던 공간이다. 현재로 치면 시장의 집무실이다. 조선시대의 부사는 많은 일들을 총괄하고 처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재는 시장은 행정의 업할, 경찰청장은 치안의 역할, 지방법원은 사법의 역할 등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부사가 모든 걸 해결하였다. 부사가 있는 도호부는 산하에 45개의 처가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이러한 지방권력의 중심이었던 부사들은 온갖 범죄자들도 곤장 아래에서는 평등하도록 만들었다.

부사가 집무 회의를 하는 장면을 재현하였다. 멀리서 볼 때 실제 사람들이 역할극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앉아있는 마네킹을 제외하면 꽤나 사실적인 조형물이었다. 따뜻한 햇살에 데워진 뜨끈한 마룻바닥에 한번 앉아보고 싶었지만 사또가 떡하니 앉지 말라고 경고를 하여 비록 앉지는 못했다. 혹시나 앉았다면 나는 곤장을 몇 대 맞았을까?

△ 관아 내 소화기

우리는 방화 또는 산불로 인해 숭례문과 낙산사라는 문화재를 소실한 경험이 있다. 보통 문화재는 나무라는 건축자재가 많이 사용되어 화재에 취약하다. 그래서 문화재를 관리할 때 주요한 보존 방법 중 하나가 화재예방이고,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헌도 마찬가지로 지붕과 건물 기둥 등이 전부 목재이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마다 소화기를 배치한 동헌의 소방환경은 십 점만점 백 점이라고 볼 수 있다.

△ 동헌 내 공중화장실

동헌은 화장실도 한옥의 형태로 잘 꾸며져 있었다. 절간의 해우소의 느낌이다. 내부로 가보진 않았지만 내부에도 옛 한옥처럼 재래식 화장실로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 동헌 내에 마련되어 있는 '오송정'

정자에서 앉을 때만큼은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자는 아주 좋은 소통의 공간이다. 과거에도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고 음주 가무를 즐기는 장소는 주로 정자였다. 현대에도 다르지 않다. 동헌의 '오송정' 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정자에서 장기를 두고 계셨다. 서로 언성이 높여가며 소통을 하시는 것을 보아하니 한 분이 확실히 이기신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자는 아주 좋은 소통의 공간이다.

△ 동헌 송도선생 효자비1

△ 동헌 송도선생 효자비2

동헌 내에는 송도 선생의 효자비도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때는 효심으로 이름난 자에게 왕이 직접 그들을 기리기 위해 효자비 또는 열녀비를 세워주었다. 이는 가문의 영광이 되기도 하고 주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송도는 연안송씨로, 조선 초기 울산에 살았던 효자이다. 선생은 울산지역 최초의 생원으로,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이나 간호했다. 1년 사이 부모가 잇달아 돌아가시나 몸소 흙과 돌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시고 새벽마다 배알하고 때에 맞추어 지냈다. 당시까지 불교식 장례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송도의 효행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이하 생략)’

△ 동헌내 부사들의 업적이 적혀 있는 부사비 (앞모습)

△ 동헌내 부사들의 업적이 적혀 있는 부사비 (옆모습)

역대 울산 동헌 관아에서 근무했던 사또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부사비가 세워져 있다. 각 비석마다 부사의 업적이 적혀있고 근무기간과 같이 근무한 관리들 이름(담당 향리 등)이 적혀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간혹 나쁜 수령이 주민들을 못살게 구는 장면이 간혹 나온다. 부디 울산에 근무했던 부사들은 부패한 탐관오리가 아니었길 소망해본다.

동헌은 과거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도심 내에서 이러한 공간을 마주한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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