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의 변천사, 수페르킬렌

- 해외 사례 들여다보기: 코펜하겐 뇌레브로도시재생

울산도시재생지원센터 한수빈 승인 2022.01.24 19:44 의견 0

- 건물을 배제한 야외 공간의 가능성
- 주민 참여를 넘어선 극단적 참여(PARTICIPATION EXTREME)

코펜하겐의 뇌레브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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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한 덴마크의 코펜하겐. 코펜하겐의 북동쪽에는 뇌레브로라는 지역이 위치해 있다. 이 곳은 학생과 예술 업계 종사자들에게 인기있는 트렌디한 다문화 지역이다. 큰 길을 따라 케밥 전문점과 인디 매장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늦은 밤까지 운영하는 바가 늘어져 있다.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가다보면 안데르센, 쇠렌 키르케고르가 잠 들어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가 모여 있는 이색 도시에도 어두운 이면은 있다.

뇌레브로 지역은 이민자들이 모여살던 곳으로 경제적 낙후가 특히 더 심한 곳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학생이 들어오고 1980년대에는 이라크와 이란, 레바논 등에서 난민이 들어왔다. 빈민가의 무결속 커뮤니티는 지역을 끊이지 않는 무력 시위, 마약 거래 등 범죄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수도의 범죄 도시 전락을 막아야 했던 코펜하겐시는 분열된 뇌레브로를 연결할 해결책을 강구했다. 코펜하겐시는 공공부지를 공원으로 정비해 뇌레브로와 코펜하겐을 연결하고 폭력과 뇌레브로 이민자들을 코펜하겐 시에 융화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코펜하겐시는 환경 개선과 더불어 주민들에게 공공시설을 경험하게 하여 안전한 도시라는 인식을 높여 사회·문화적 결속을 이루고자 하였다.

뇌레브로 재생사업 대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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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민끝에 나온 것이 '수페르(Super:특별한)킬렌(killen:쐐기)' 공원이다. 이 공원은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인종 다양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공간이다.

공간의 기능 별로 ▲붉은 광장 ▲검은 광장 ▲녹지 공간 세 구획으로 나뉜다.

수페르킬렌 공원의 붉은 광장(RED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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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레브로 대로에서 공원으로 들어서면 바닥이 온통 붉은 공간이 보인다. 이 곳은 위치한 근처 지역 스포츠 센터를 반영하여 문화 및 운동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붉은색의 바닥재는 운동 및 활동에 용이한 고무탄성재로 조성되었고 그에 걸맞는 놀이시설이 설치 되어있다.

수페르 킬렌 공원의 검은 시장(BLACK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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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잉겔스 설계팀은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검은 시장'을 조성했다. 강렬한 바닥의 등고선과 분수 근처에 위치한 앉음벽은 이용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겨 만남의 장이 되도록 한다.

수패르킬렌의 녹색 공원(GREE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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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검은 바닥의 공간 말고 일반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민의 요구에 따라 가장 넓게 조성된 녹지 공간이다. 그 어떠한 건축물도 없는 이 공간은 이용자들의 의도에 따라 그 용도가 변한다. 뇌레브로 주민들은 이곳에서 나무를 따라 산책을 또는 잔디밭에서 피크닉 혹은 바베큐를 즐기기도 한다.

-극단적 참여 캠페인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간 안의 요소들이다. 언뜻보면 조화롭지 않은 시설물들은 뇌레브로 로의 이민자들을 대표하고 있다. 모로코에서 온 별모양 분수, 일본에서 본 따 만든 문어 미끄럼틀, 자메이카에서 온 대형 스피커, 태국에서 온 무에타이 링 등 62개국에서 온 108개 소품이 수페르킬렌 공원 곳곳에 있다.

일본 문어 미끄럼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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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주민 참여를 넘어선 극단적 참여를 통해 뇌레브로 이민자들에게 공공시설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이기 위해 실행된 캠페인이다. 설계팀은 주민들에게 고향에서 가져와 공원에 설치하고 싶은 소품이 무엇인지 물었고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팔레스타인 이민 2세대 10대 소녀 히바(Hiba)와 알로(Alaa)는 수페르플렉스 팀과 동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서안, 시리아 국경 인근에서 흙을 가져와 검은 시장 안 작은 언덕 위에 뿌렸다. 팔레스타인에서 실려 온 붉은 흙은 시간이 지나며 원래 토양과 뒤섞였다. 이민자를 덴마크 사회의 이웃으로 동화하는 수페르킬렌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주민들은 수페르킬렌 조성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그들의 정체성이 담긴 공공시설은 주인의식을 일으키고 공간은 이민자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주민들은 수페르킬렌에서 걷기도, 놀기도, 먹기도 하며 마을에 대한 애착을 키워나갔다. 실제로 시위와 폭력이 일상이던 기존의 뇌레브로와 달리 공원 조성 이후 흔한 낙서 없이 초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변화의 바탕에는 그들의 정체성을 담은 극단적 참여와 이용목적을 제한하지 않은 오픈스페이스(OPEN SPACE)가 있다.

울산도 뇌레브로와 유사한 맥락에 놓여있다. 울산은 임진왜란 때부터 외부에서 들어와 정착하게 된 거주민들이 많아 이름이 太和(태화)라고 지어질 정도이다. 현재에도 많은 대기업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하나의 커뮤니티로 융합되었을 때 시너지가 발생한다. 그 바탕에는 획일화된 주민참여 프로그램과 거점시설이 아닌, 주민들 각각의 개성이 녹아든 프로그램과 유연한 공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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